나의 디자인 이야기 : 첫 번째

 

90년대 초반,

누가 가르쳐주지 않았는데 태어나고 처음 스스로 달달 외우게 된 노래는 92년 서태지와 아이들의 '난 알아요'.

1994년, 8살 초등학교 1학년 때 학예회에서 그린 그림이 1등을 했다. 어릴때는 나름 인생에 큰 사건이었는데 '왜 내가 1등이지?' 어리둥절했다.


2000년대 초반,

농구를 할 수 있는 체육시간과 점심시간이 제일 행복했다. 수업 과목은 '사회'와 '윤리와 사상(철학)'이 제일 재밌고 이해가 잘 됐으며 쉬웠다. 이 수업들은 내 인생에 근간이 되었다. 철학 수업시간에 중도(불교), 중용(서양 철학)이라는 단어, 단 몇 줄의 짧은 설명은 앞으로 내 디자인과 인생에 있어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당시 매니아 음악으로 조명을 받던 홍대 앞에 형성되있던 언더그라운드 인디 음악 문화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특히 조선 펑크라고 불리던 크라잉 넛을 좋아했고 다이나믹 듀오, 가리온 같은 한국 힙합 그룹을 동경했다. 그 영향으로 주류의 관성에 맹목적으로 갇히지 않게 되었고 소신있는 생각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2004년,

1998년 결성된 한국 힙합의 클래식, 가리온의 1집이 12월 16일에 발매됐다. 이 앨범을 통해 '클래식'이라는 뜻을 처음 이해 하게 되었다. 

2004년이 2달 남았을 때,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하기 위해 미술을 시작했다. 모든 것은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2007년에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며 처음 디자인을 배웠다. 그때 제품 디자인은 당연히 핸드폰 디자인이 대세였던 시절이었다.

3월 2일 첫 디자인 수업을 들었다. 첫 강의, 첫 숙제를 부여받았다. 밤을 꼬박 새워 고민하며 '평면 조형' 과목에 첫 주제인 '통일, 강조'를 작업했고 3월 9일 아침, 긴장해서 덜덜 떨며 더듬으면서 발표를 했던 기억이 난다.

1학년때는 대학 도서관에 꽂혀있던 책을 읽으면서 디자인이 무엇인지 이해했는데 해외를 누비는 디자이너들의 이야기를 담은 '디자이너가 말하는 디자이너'라는 책을 보고, 몇개월 마다 전세계의 나라와 도시를 이동하며 프로젝트를 한다는 내용에서 디자이너란 참 멋진 사람이라고 자부심을 갖게 되었다.

'외국은 디자이너로서 출장갈 겸 놀고 오는거지, 관광으로 가는 건 멋지지 않아!'라는 정말 바보같은 생각을 고집한 덕분에 정확히 그로부터 10년 뒤 첫 출장 겸 유럽 여행을 갔다.

 

아무것도 모르지만 술을 마시면 선배, 동료들과 디자인을 뜨겁게 토론했다. 누구보다 진지했고 뜨거운 나날이었다. 
그래서 뭐든지 잘하고 싶은 의욕이 넘쳤다. 그러나 거의 모든 것이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던 시절이었다. 

처음 동아리에 들어가서 내 컴퓨터가 놓인 내 자리가 처음 생겼다. 처음으로 생긴 내 자신의 공간에 처음으로 행복을 느꼈고 살아있음을 느꼈다. 1~2학년 내내 동아리 방에서 먹고 자면서 밤 새워가며 열심히 뭔가를 했지만 마음 먹은대로 제대로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21살, 1학년생인 나는 23살이면 디자이너로서 세계무대에 이름을 알릴 수 있는 나이라고 생각했다. 나에게 23살이라는 나이는 가능성을 증명할 수 있는 기준이 되는 나이였다. 그리고 많은 전설적인 디자이너들의 명작이 20대에 이루어진 것이 많다. 지금도 많은 젊은 디자이너들이 20대에 자신의 활동으로 이름을 알리고 그들을 지원하기 위한 이벤트가 많이 있다. 당시 나는 점점 더 조급해졌고 열망은 커져갔다. 그때 내 목표는 세계 어느 나라를 가도 나를 필요로 하고 불러주는 사람들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는 이게 얼마나 큰 목표였는지 잘 알지 못했다. 그냥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목표라고 생각했다. 

 
1학년 때 '이것은 의자가 아니다'라는 한손에 잡히는 노란색 표지의 책을 읽었는데 아무리 읽어도 그때는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내가 TED에서 강연을 한다면 세상에서 가장 멋진 사람이 될 것이라는 상상을 했다.
인터넷으로 어찌어찌 접하게 된 MIT media lab은 실제로 세상을 자신들의 손으로 바꾸는 가장 멋진 사람들이 있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2007년 처음 대학에 들어갔을 당시는 한국 디자인이 세계 수준으로 도약하려는 본격적인 시도를 하기 시작한지 그리 오래 되지 않은 과도기였다. 나는 이 시점에서 받은 기초 조형 교육에서 큰 아쉬움을 가졌었다. 하는 고생에 비해 기본기와 창의성을 키우기 위한 효율성과 효과가 크게 떨어졌다. 그래서 누군가가 제대로 가르쳐 주고 정확한 훈련을 하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학생들이 개인의 감과 노력에 의존해 스스로 깨우치고 거의 혼자서 이루는 경우가 많았다. 이것이 과거 한국에서 나오는 디자인들이 세계와 종이 한장 차이가 생겼던 이유가 아닌가 생각했다. 이 때문에 나이와 경험보다는 비전과 실력으로 말해야하는 디자이너로서 십수년 후 미래에 처하게 될 도전적인 상황에 늘 불안했다.


2008년 봄 여름은 내 인생에서 가장 결정적인 해였다. 가장 잉여롭게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가장 쓸모없이 허비했기 때문에 

모든 물음이 결론이 났고 모든 계획이 완성되었으며 더 이상 어떠한 고민도 의미 없어졌다. 

또 디자인을 위한 나만의 훈련이 완전히 틀이 잡혔고 이미 일상이 된지 오래였다.   

2008년 8월 15일

잠실 올림픽 경기장 서태지콘서트. 두근두근 무대 앞쪽에서 서태지를 봤다. 서태지라는 스타는 나에게 늘 영감을 준다.

MUJI(무인양품), 책 슈퍼노멀, 책 디자인의 디자인, 책 디자인의 요소들(저자 : 게일 그리트 하나)을 보고 그들의 철학에 심취했다. 
가장 단순하면서도 가장 사소한 것을 디자인하는 것이 오히려 아무나 하기 힘들고 실력과 탄탄한 기본기가 필요하다는 것이라는 것에 동감했다. 그래서 아무도 관심가지지 않는 것에 대한 가치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책에 글은 안 읽고 사진, 그림만 주로 봤다.) MUJI와 Uniqlo의 홈페이지와 매장을 들어섰을 때, 느낄 수 있는 모든 경험과 그것을 아우르는 아이덴티티라는 것에 강한 인상을 받았다.

(23살 때 홍콩에서 우연히 들어간 대형 MUJI 매장은 인상 깊었다.)

그들이 제공하는 경험에서 받은 인상이 그들의 아이덴티티가 말하고자 하는 철학과 가치관, 태도이다. 나는 그런 것들에 큰 영향을 받았다. 아이처럼 매장 곳곳을 누비며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제품들을 만지작 거리곤 했다. 

디자인을 탐구하면 자연의 이치를 깨닫게 된다고 생각했다.
 

'프랑스 디자인의 오늘' 전시를 소마 미술관에서 봤다. 내 인생 전시였지. 거기서 5.5 DESIGNERS를 처음 봤다. 열광했다.

나중에는 FRONT DESIGN  이 누군지 알게 됐다. 이런 두팀을 부러워 했고 그들처럼 되고 싶었다. 

Dieter Rams의 1940년대 이후 주요 작품을 접했을 때 지금도 흉내내기 힘든 클래식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디자인에서 기본이라고 생각하던 이치들이 모두 담겨있었다. GOOD DESIGN의 결정체였다. 

서울이 2010년 세계 디자인 수도로 지정되었고 잠실에서 2008 서울 디자인 올림픽이 열렸다. 학교에 두명의 디자이너가 방문했다.

세계적인 유니버설 디자이너 Patricia Moore의 강연, 그 이후 서울 디자인 올림픽 총괄 감독인 권은숙 휴스턴대 교수의 강연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