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디자인 이야기 : 세 번째

2018년, 

운좋게 밀라노 디자인 위크 포리살로네  TORTONA에 초청 받았고, 밀라노에도 My boss가 생겼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 좋은 경험을 쌓았다. 그리고 완전히 봉인해제 되었다.

세월이 지나 조금 나이가 찬 걸까. 아무튼 이제 벌써 세번째 페이지니까. 눈깜짝할 사이의 십년이였다. 

운좋게 몇 나라를 여행하게 되면서 먹고 살아보려고 발에 땀나듯 뛰고 파이팅만 넘치게 들이댔다. 당연히 실수와 실례를 많이 했다. 알다시피 결과는 없었다.

20대에는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부터 먼저 배워야 했다. 동시에 디자인에만 몰입했다.

2007년, 다양한 것에 의욕이 들끓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아무것도 해보지 못해 후회스럽다. 청춘은 즐거워야 했다.

2017년, 31세. 집밖에 나가지도 않는 내가 30대에 처음 혼자서 모험을 즐기게 되었다. 역시 청춘은 즐거워야 한다. 

처음 런던에 가기 전과 지금, 나보다 앞선 많은 분들이 시도에 도움, 용기, 따끔한 조언을 주신다.

그들은 영 디자이너들을 발굴해야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2005년, 재능이 부족해서 갖은 멸시를 견뎌냈다. 

2007년,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 사고방식과 생활 태도를 전부 뜯어버리고 개조했다. 방 구석에서 디자인을 할 때면 스티브 잡스같은 사람인 것처럼 느끼고 행동했다. 허세는 필수지. 남보다 시간이 많이 걸리고 시행착오가 많았다. 남이 알려주어도 고집을 꺾지 않았고 겪어야 비로소 깨달았다. 그렇게 늦게 가고 있다. 그러나 늘 내가 잘가고 있다고 느꼈고 대단하다는 이들의 노하우를 접할 때 마다 수없이 '그래! 그거야! 그렇지!'하였다. 남들도 나에게 그렇게 말했다. 이상하다. 그래서 계속 갈 길을 갔다.

이렇게 만들어진 열등감의 보상심리는 얄팍한 우월감을 만들었다. 내 것을 해내기 위해 스스로 고립시키고 자기방어와 건방을 떨었다. 나보다 나으면 폄하했다. 그렇게 허세를 떨었다. 능력은 부족한데 의욕은 우주 같았다. 행복을 느끼지 못한채 그렇게 시간이 지났다. 이제는 뭘 아는 사람들은 보면 대꾸도 안할, 옹졸한 포트폴리오라는게 생겼다. 그래도 아마추어로서 할 건 한 거 같다. 이런 나여서, 디자인 공부를 이제 시작하는 이들에게 늘 힘이 되고 싶었다. 나중에 내가 받은걸 돌려주고 싶다. 대화할 기회가 생길 때 조금의 가능성이라도 불씨를 살리고 격려를 해주려고 한다. 일단 그들은 나보다 나은 상태로 시작하기 때문이다. 나도 하고 있는데. 그들의 다음 스텝은 아무도 모르니까. 어벤져스를 봐라.

몇가지 중요한 디자인을 거쳐 '분홍 새대가리'를 하나 만듦으로서, 그렇게 상일 디자인의 스타일에서 첫번째 화법이 확립되었다.

2019년,

많은 인물군상들의 흥망성쇠를 지켜봤다. 사회적 성공은 인간성과 관계없다. 인간적 완성은 지능이다. 나는 지능이 낮다. 오래전 착한 사람 컴플렉스에서 벗어났다. 인생을 돌이켜보면서 잘못도 했고 실수하며 패를 끼치기도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받아들였다. 이때까지 타인에게 고통을 받는다고만 착각했다. 내 인생에서 정말 다행인건 첫번째, 쫄보이고, 두번째, 인생에서 양심이 사시나무 떨리는 경험도 해봤다는 것이다. 혹독한 반성, 후회, 고통에 악몽으로 잠을 설치기도 했다. 몇가지 트라우마. 진짜 인생이다. 명랑하고 순수하기만 했던 소년이 인간이 되고 있다. 

 

나는 뭔가 부족했다. 그래서 다른 것을 생각할 수 없었고, 늘 내가 가진 한계를 뛰어넘는 인생을 살아내야만 했다. 아주 당연하다는 것이 고귀한 결과임을 깨달은지 10년이 지난 지금쯤. 여전히 내 자신을 반쪽 짜리 디자이너라고 생각. 거의 모든 면에서 쉽게 얻는 것은 없다.

점점 두려워지고 있다. 지금은 안개속에 가려져 눈에 보이지 않는 저 한계에, '부딪히면 아프지 않을까?' '다시 부딪히면 이길 수 있을까?'